공식적인 자리에서
취미를 묻는 질문은 늘 애매하다.
면접장, 소개 자리, 프로필 한 줄.
형식은 가볍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숨어 있다.
정말 즐기고 있는 활동이 있어도
그 질문 앞에 서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게 취미라고 말해도 괜찮은지,
그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지,
공식적인 자리에서 꺼내도 어색하지 않은지.
그래서 우리는
취미를 말하기 보다
취미를 한 번 더 점검한다.
성인이 되면서
취미는 점점 설명이 필요한 시간이 된다.
그저 좋아해서 하는 일보다,
이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덧붙일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는 취미를 대할 때
과정을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활동과
결과를 소비하는 수동적인 취미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생각한다.
취미를 말할 때 느끼는 망설임이나 자신감도
대부분 이 기준에서 비롯된다.
말하기 쉬운 취미들
과정을 만들어 가는 취미들은
대체로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꾸준한 연습을 전제로 하는 예체능 활동이나,
글쓰기·인플로언서·유튜버 처럼 결과가 남는 창작 활동,
시간을 들여 익숙해지는 기술이나 공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취미들은
과정이 비교적 분명하고,
시간을 들였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취미로 말하기에 큰 부담이 없다.
“무엇을 하고 있다” 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기 때문이다.
감추게 되는 취미들
반대로
이미 만들어진 결과를 소비하는 취미들은
설명하기가 애매해진다.
OTT나 유튜브를 보거나,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술마시고 수다를 떤다든지,
그저 잠을 자며 쉬는 시간 같은 것들.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간을 통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음에도
취미라고 말하기보다는
조용히 감추는 쪽에 가깝다.
시간을 허비한 것처럼 보일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굳이 꺼내지 않게 된다.
취미에도 효용을 따져야 할까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취미에도
효용과 가치를 따져야 할까.
능동적인 취미는
“그래도 오늘은 나를 성장시켰다” 는
안심을 준다.
반면 수동적인 취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괜히 설명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회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취미인지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취미와 특기의 차이
취미는
남에게 평가 받지 않지만
스스로 잘한다고 느끼는 감각이 있다.
오랜 시간 반복된 연습 끝에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태.
능숙해진 감각으로
비교적 쉽게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 느끼는
작은 뿌듯함 같은 것.
그래서 취미는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다.
특기와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특기는
남에게 인정받을 때 힘을 얻고,
취미는
남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점에서.
오랜 반복 끝에
굳이 애쓰지 않아도 결과가 나올 때,
그 감각을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건 이미 취미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다만 이런 기준은
취미를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에 가깝다.
누군가의 즐거움이나 쾌락의 감각을
타인이 대신 평가할 수는 없고,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그래서 취미는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방식은 하나일 필요가 없다.
현대인은
하루에 너무 많은 역할을 산다.
성과를 내야 하는 직장인으로,
가족과 관계를 책임지는 어른으로,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개인으로,
웬만한 감정은 쿨하게 넘기고
혼자 정리해야 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다양한 하루를 살아간다면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방식도
하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날은
몸을 움직여야 하루가 끝나고,
어떤 날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해져야
비로소 하루가 닫힌다.
취미는
삶을 발전시키는 도구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하루를 무사히 닫게 해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시간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건 단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나에게만 작동하는 방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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